7일 정부와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위원회는 현재 배드뱅크 재원 8000억원 중 4000억원을 은행권 뿐 아니라 여신전문금융회사와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참여를 통해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채권 매입이나 채무 조정 등 협약 대상과 관련해서도 여신전문금융회사와 상호금융,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금융권 모든 기관이 가입할 수 있도록 독려할 예정이다.
재원 조달 범위를 넓힌 건 은행권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은행권에선 제2금융권까지 포함된 부실 채권을 은행 출연금으로만 소각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참여하는 기관을 넓히자고 주장해왔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은행이 보유한 7년 이상·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 규모는 1조864억원 가량인 반면, 카드사는 1조6842억원, 상호금융권 5400억원, 저축은행 4654억원 등이었다.
제2금융권이 참여한다면 기여 비중을 두고 막판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저축은행은 PF 대출 부실화의 여파가 남아있고, 카드업계도 수익률 하락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된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가 낮아졌고, 카드론도 정부의 대출 규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배드뱅크 재원까지 마련하라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향후 배드뱅크 프로그램 운영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 방안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업계와 공감대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논의 과정에서 나온 배드뱅크의 도덕적 해이 등의 논란을 해소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금융위는 “철저한 상환능력(재산·소득 등) 심사를 거쳐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능력이 없는 이들의 채무만 소각할 것”이라며 “지원이 적절치 않은 채권에 대해서는 매입하지 않거나, 지원 결격사유로 명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식투자 등으로 생긴 빚이나 유흥업소의 채권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추경 심사에서 “일부 악의적 채무자까지를 포함한 일괄 지원은 여타 사회구성원들의 불만과 비판을 야기할 수 있다”며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채권은 없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채무조정에서 지원되는 외국인 기준도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위 측은 “외국인 지원 범위는 과거 채무조정 사례, 여타 예산사업 등을 감안해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로 결정할 예정”이라며 “2013년 국민행복기금이나 2020년 코로나 긴급재난 지원금의 경우, 영주권자 및 결혼이민자를 포함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새카만 연기가 푸른 하늘을 가로질렀다. 길바닥은 쓰레기 조각으로 뒤덮였다. 발에 채는 쓰레기는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늘어선 집들로부터 나왔다. 지난 4월25일 인도네시아 자와티무르주(州) 말랑에 위치한 감핑안 마을에는 집마다 쓰레기가 사람 허리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마당에서 흘러넘친 쓰레기가 마을 길목까지 나뒹굴었다.
한 집 앞에서 ‘신라면 볶음면 치즈맛’ 스프 봉지를 발견했다. 신라면 볶음면 치즈맛은 농심이 일본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이다. 이 밖에도 호주에서 온 땅콩 포장재, 캐나다 로컬 마트의 유기농 크랜베리 봉지, 유럽 강아지 간식 봉투, 네덜란드 세탁세제 껍데기, 대만의 고양이 사료 봉지까지 다양한 나라의 쓰레기가 마을 곳곳에서 발견됐다. 마을을 점령한 쓰레기는 마을 사람들이 버린 게 아니다. 전 세계 쓰레기가 들이닥친 마을을 현지 환경단체 에코톤(Ecoton)과 함께 찾았다.
다국적 쓰레기가 작은 마을로 흘러들어온 사연은 이렇다. 마을 바로 옆엔 에카마스 포르투나(Ekamas Fortuna)라는 펄프·제지기업이 운영하는 큰 공장이 있다. 에카마스 포르투나는 전 세계에서 수입한 폐지를 재활용해 종이를 만든다. 수입한 폐지에는 플라스틱을 포함한 다양한 이물질이 섞여 있다. 공장은 내부 공정을 통해 커다란 종이들을 솎아내고, 나머지 쓰레기는 파쇄해 이곳 주민들에 판다. 기계로는 더는 종이를 추출하기 어려운 상태다. 주민들은 공장의 세척 과정으로 젖은 쓰레기에서 종이를 떼어낸뒤 말려서 제지 공장에 되판다.
그렇게 마을로 실려 온 쓰레기 조각들 사이엔 미처 다 파쇄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쓰레기의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파쇄되지 않아 형체가 남아있는 쓰레기들이다. 매주 다른 나라의 쓰레기가 들어오고 다시 태워진다. 한국 쓰레기도 예외는 아니다. 30년 전부터 쓰레기를 사들였다는 한 주민은 “전 세계 쓰레기를 봤다”며 “한국에서 온 쓰레기도 몇 년 전까지 많았다”고 말했다. 에코톤 대표 다루 세티오리니 박사는 6개월 전에도 이 주의 또 다른 도시 모조케르토에 있는 파브릭 케르타스(Pabrik Kertas) 제지 공장 인근 마을에서 한국 쓰레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낯선 언어가 적힌 쓰레기를 매일 만난다.
매주 쓰레기를 한 집마다 한 트럭씩 사들인다. 한 트럭이 옮기는 쓰레기는 4~5t가량 된다. 수십 가구가 수십 트럭 쓰레기를 받으니 마을 전체가 쓰레기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 지역의 자원순환을 도모하는 환경단체 악시(AKSI)의 창립자인 야니는 한 트럭 분량의 쓰레기가 약 15만루피아(약 1만3000원)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이 중 종이만 골라 공장에 되팔면 약 90만루피아(7만6000원)를 받을 수 있다. 쓰레기와 함께 살고 쓰레기를 맨손으로 헤집는 대가로 매달 손에 쥐는 돈은 350만루피아(29만5000원) 정도다. 현지 사정을 고려하면 작지 않은 액수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평균 최저임금은 월 310만루피아(26만1000원)였다. 이 마을이 속한 자와티무르주의 최저임금은 월 217만루피아(18만2000원)로 더 적다. 야니는 “이 동네는 원래 농사를 짓던 마을이지만 쓰레기 분류가 농사보다 돈이 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쓰레기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3년 제지 공장이 들어서고 몇 년 만에 주민들은 양배추 농사를 그만뒀다.
제지공장이 폐기물 처리 시설이 아닌 마을 사람들에게 수입폐기물을 반출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역 사회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공공연하게 운영되고 있다. 30여 년 간 마을로 들어오는 쓰레기차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마을로 보내진 쓰레기 중 종이 비율은 30% 내외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거의 플라스틱이다. 공장에서 한번 종이를 걸러낸 뒤 주민들에게 당도하는 쓰레기 중 플라스틱 비중은 이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플라스틱을 더듬어 손톱만 한 골판지들을 긁어내거나 줍는다.
선진국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관련 규제가 미비하고 처리 비용이 값싼 개발도상국으로 향한다. 개도국은 선진국에선 처치 곤란 신세였던 쓰레기를 원료 혹은 연료로 사용할 목적으로 수입한다. 인도네시아도 대표적 폐기물 수입국 중 하나다. 이곳에서 쓰레기가 ‘제대로’ 재활용되면 좋겠지만 개도국의 쓰레기 처리 시스템은 선진국보다 더 열악하다.
2021년 1월 개정된 바젤 협약은 오염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폐기물’에 포함해 국가 간 이동을 제한했다. 이후 단일한 재질의 깨끗한 플라스틱만 신고 후 수출이 가능해졌고, 오염된 폐플라스틱은 사전에 수입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한국을 포함한 187개국이 이 같은 내용의 협약 개정안에 서명했다.
국제 통계를 보면 바젤 협약 개정 전후로 관세코드 ‘HS 3519’에 해당하는 폐플라스틱의 수출입은 급감했다. 지난 5월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폐플라스틱의 국가 간 이동이 2014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감핑안 마을에서도 확인했듯 여전히 엄청난 양의 폐플라스틱이 개도국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국경을 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종이, 고무, 옷, 전자제품 등 다른 쓰레기로 둔갑하면 된다. 관세코드 ‘HS 3519’로 분리되는 폐플라스틱은 전부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쓰레기의 경우만 해당한다. IPEN의 <플라스틱 쓰레기 무역: 가려진 숫자들> 보고서를 보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종이 쓰레기(관세코드 HS 4707), 옷 쓰레기(HS 6309), 전자제품 쓰레기(HS 8549)에 뒤섞인 채 개발도상국에 수출된다. 보고서는 종이 쓰레기엔 5~30%, 옷은 60~70%, 전자제품은 20% 내외의 플라스틱을 포함한다고 추정한다. 보고서는 “폐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유해물질의 국제적 이동은 오히려 점점 많아졌다”며 “암암리에 이동하는 플라스틱은 각국 재활용 통계를 왜곡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먹이 사슬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에코톤이 유엔 무역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인도네시아는 2024년 전 세계에서 245만8699만t의 폐지를 사들였다. 무게로 따지면 호주, 미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일본, 뉴질랜드 순으로 많은 양의 폐지를 인도네시아에 보냈다. 한국은 8만5463t의 폐지를 수출해 9위에 이름을 올렸다.
폐기 단계의 플라스틱을 직접 만지는 일이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쓰레기 노동이라는 고강도 육체노동이 유발하는 근골격계 질환 외에도 쓰레기 수거·선별 노동자들이 유해한 폐기물로 인한 화학적·생물학적 위험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해외 연구는 플라스틱 수거 노동자들이 감기, 기관지염, 설사, 고혈압, 당뇨, 위장병, 피부병, 신장 및 간 질환을 호소했음을 기록했다. 대조군보다 플라스틱 수거 노동자들이 일반 건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1.5배 높다고 발표한 연구도 있다.
플라스틱 제조에는 1만6325개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유해물질로 분류된 것만 4219개에 이른다. 무해하다고 알려진 것은 1380개 성분에 불과하고, 나머지 1만726개에 대한 유해성 정보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사용 단계부터 화학 첨가제 등 오염물질을 뿜어내는 플라스틱이 폐기 단계에서 안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다 유해성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다. 플라스틱을 소각하면 다이옥신, 수은, 폴리염화바이페닐(PCBs) 등이 대기 중에 퍼진다. 호흡기 질환, 암, 생식 능력 저하, 면역력 저하 등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다.
감핑안 마을 사람들은 종이를 걸러내고 남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집 마당 구석진 곳이나 마을 공용 가마에서 태운다. 저감장치는 물론 지붕도 없는 가마는 마을 한가운데서 쉬지 않고 거대한 잿빛 연기를 뿜어댄다. 주민들은 연기를 경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연기 바로 옆에서 연을 날리거나 자전거를 탔다. 연기 앞을 지날 때 눈을 찌푸리거나 코를 막지도 않았다. 주민 중 마스크를 낀 이는 없었다.
현지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수입 쓰레기에 적용되는 오염도 기준을 상향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의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티오리니 박사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엔 수입하는 폐지 오염도를 최대 2%로 제한하고 올해는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펄프·제지 산업협회의 강력한 로비 때문에 종이 폐기물에 대해서는 오히려 검사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집권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는 것을 보며 1년 전쯤 미국 외교당국자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윤석열 정부의 북한 인권 개선 기조를 전폭 지지하면서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심리전’에 기대려는 경향을 우려했다. 라디오 같은 정보 유입 수단과 달리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일종의 ‘인권의 무기화’라는 지적이었다. 한국 정부가 놓친 지점을 짚어내는 미 당국자의 모습이 다소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최근 만난 경제 전문가는 한국이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요구에 대응해 미국산 쌀 등 농산물 수입을 늘리되, 이를 공적개발원조(ODA) 물자로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핵심 지지 기반인 농촌에 성과로 자랑할 수 있고, 한국은 농가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ODA 확대 기조에 부응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실현 가능성이나 정책 효과를 떠나서 ‘윈윈’ 카드를 고민하는 미 전문가의 모습이 조금은 신선했다.
근 3년 동안 워싱턴에서 만난 한반도 사안을 다루는 미 정부나 싱크탱크 인사들로부터 이따금 참신한 시각을 접했다. 중국·일본에 비하면 한국통 인사들의 저변이 아직 넓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워싱턴 주류의 관심도 지정학을 넘어 다른 영역에까지 서서히 뻗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대미 외교에서도 워싱턴의 싱크탱크나 학계 등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가 점차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의회나 법원을 무시한 채 국정 독주를 이어가는 트럼프 치하에서 싱크탱크들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졌다.
그럼에도 이들을 주축으로 한 미 조야의 담론은 계속해서 미국 내 한국 관련 인식을 담아내는 창구 역할을 한다. 특히 트럼프 2기에는 주한미군부터 경제·기술 협력까지 한·미 동맹이 지닌 전략적 가치를 부각하는 미국 내 목소리가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이 한반도 관련 정책 결정에 잠재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내부 논의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의도 진행했다는 외신(액시오스) 보도가 그 예다.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공공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역대 정부의 과오를 넘어서길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코드’가 맞지 않는 한·미 연구기관 간 교류, 소속 전문가들의 방미 또는 한국 초청이 하루아침에 끊긴다는 우스개가 종종 회자된다. 폭넓은 전문가들로부터, 때로는 듣기에 불편한 의견도 청취하는 것이 공공외교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관심사를 읽어내면서 한국 정책 목표와의 접점을 만들어 소통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억제력 강화와 관여를 병행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온 어느 전문가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종전선언 드라이브를 회고하며 전한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고자 한다. “미국의 관심사(중국)는 외면하면서 하나의 이슈(북한)만 거듭 외치는 것은 전략의 부재로 여겨졌다.” 3년 만에 돌아온 진보 정부에 대한 그의 평가가 이번에는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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